나바호 선교2

2013년 2월 22일 금요일

와시추


  
미국 원주민들의 글을 읽으면 와시추(wasichu)라는 표현을 보게 된다. 이는 백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느 나라 혹은 부족이든 자신들과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비어가 있는데, 이 와시츄도 그러한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백인들을 비아냥 거리며 말할 때 양키’(Yankee) 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와시추는 본래는 좋은 말이었다. 이는 원주민들이 신성시했던 주술사의 약초주머니를 가리키는 말인 와시춘(wasichun)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총과 말로 무장하여 자신들 앞에 나타난 백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원주민들은 그들을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겨 존중의 의미로 와시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존숭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들이 총과 말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고 살육전을 예사로 펼치자 그들에게 사용되었던 존경의 말이 이제 야유조의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과거 스페인이 남미를 얼마나 잔혹하게 정복해 나갔는지를 익히 알고 있다. 1519년 스페인의 귀족 코르테스(Cortes)는 병사 500여명과 말 10여필, 그리고 대포 몇문을 가지고 당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던 아즈텍 왕국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런데 당시 아즈텍 왕과 원주민들은 그들을 처음 대했을 때 열렬히 환대했다.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나타난 그들을 보면서 대단한 존재로 여기고 환영했던 것이다. 그 이전 1492년에 콜럼부스도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의 건국자로 꼽히는 청교도 필그림들이 1620년 뉴잉글랜드에 도착했을 때도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1769년 이후에 프란시스코 수도회 사람들이 미국의 서부 태평안 연안에 도착했을 때도 원주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환대는 결국 그들로부터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환대받았던 그들이 원주민들에 대한 정복과 살육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백인들의 잘, 잘못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 원주민들이 본래부터 미개하고 잔인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선교마저도 대부분 서구에서 비서구 세계를 향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곧 가진 자가 가지지 않은 자를 교화하고 계몽하는, 그래서 제국주의적이고 지배적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교는 상대방을 섬기고 존중하는 상향식 방식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성육신 정신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도 종의 형체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섬기셨다(2:6-8). 오늘날 미국의 선교가 전세계적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바로 이 하향식 방식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선교는 미국 원주민들에게 마저도 철저하게 배격을 받고 있으며 거의 전멸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어 있다. 그들이 원주민들에 대한 존중과 섬김의 선교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주민에 대한 선교는 마치 가진 자로서 가지지 않은 자에게 시혜를 베풀 듯, 혹은 단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원주민들을 섬기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단기선교 등에서도 무엇을 더 가진, 높은 자처럼 행세할 수 있는데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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